목언통신(木言通信) / 이기철
나무에게 낙엽은 절망을 내려놓는 방식이다
거기에 후회 같은, 눈물 같은 건 없다
사람 발자국 소리 듣고 아침 식사를 준비하던 나무는 발자국 소리 끊어진
밤을 어떻게 지낼까 생각느라 다른 생각은 아무것도 못했다
나는 키스하지 않고 열매 맺는 방식을 나무에게서 배우려고
나무를 쳐다보다 목병을 얻었다
가을은 잎 피는 속도로 와서 잎 지는 속도로 떠난다
식물의 잠 속으로 걸어 들어간 나비는 언제 나오나?
내 가장 두려운 것은 나무를 베어내고 난 뒤의 사라진 풍경이다
그것이 나무가 고독을 섬기는 까닭이다
맨드라미가 집 밖으로 나가고 나서 봉숭아가 집 안에 들어와 씨를 익혔다
조금 더 있으면 발등에 봉숭아 씨가 폭죽을 터뜨릴 것이다
저 나뭇잎 하나가 올해의 마지막 초대장이 될 때까지
나는 기다림 몇 포기를 가슴에 옮겨 심는다
숲에만 오면 늙은 새도 동요를 부르는 까닭을 알 것 같다
내가 쓰는 말들은 나의 몸속을 다 돌아나왔다
나무와 나뭇잎 안에 몇 동이의 꽃물이 고여 있다는 걸
나는 꽃이 진 뒤에야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