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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어록 / 이기철

덕 산 2024. 10. 21. 06:47

 

 

 

 

 

가을 어록 / 이기철 

백 리 밖의 원경이 걸어와 근경이 되는

가을은 색깔을 사랑해야 할 때이다

이 풍경을 기록하느라 바람은 서사를 짜고

열매들은 햇살이 남긴 지상의 기록이다

작은 씨앗 하나에 든 가을 문장을 읽다가

일생을 보낸 사람도 있다

낙과들도 한 번은 지상을 물들였기에

과일을 따는 손들은 가을의 체온을 느낀다

예감에 젖은 사람들이 햇살의 방명록에 서명을 마치면

익은 것들의 육체가 고요하고 견고해진다

결실은 열매들에겐 백 년 전의 의상을 꺼내 입는 일

그런 때 씨앗의 무언은

겨울을 함께 지낼 이름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내 시는 씨앗의 침묵을 기록하는 일

바람이 못다 그린 그림을

없는 물감으로 채색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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