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나무 / 정용진
태양빛이 얇아지고
지나는 바람결이 소슬해지면
시냇가에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듯
나뭇잎들을 하나 둘 떨구면서
가을 나무가 하는 말이
예사롭지 않다.
너무 뜨겁던 날 괴로웠다.
폭풍우가 쏟아지던 밤이 힘들었다.
성숙한 과일들이
지체에서 떨어져가던 날
마음이 몹시 아팠다.
찬 서리가 내리치던 초겨울
끝내 뜨겁고 붉은 눈물을 흘렸다.
가을 나무는 벗은 채
신 앞에 홀로서는
단독자의 자세로
지난 삶을 심판 받는다.
내면 깊숙이 고뇌의 흔적으로
가슴 속에 둘려지는 연륜(年輪).
가을 나무는
알몸으로 서서 흰 눈을 기다리며
가지마다 볼록볼록
생명의 꽃봉오리를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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