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운 글

일요일 아침의 깨달음 / 법상스님

덕 산 2023. 12. 24. 08:48

 

 

 

 

 

일요일 아침의 깨달음

 

여느 때 처럼 자전거를 타고 새벽바람을 가르며 관음사로 향한다.

꽃샘추위가 제법 귀를 아프게 하지만 견딜만하다.

마음은 벌써 법상 스님의 다실에 가 있다.

일요일 새벽엔 스님과 함께 법우님들과 어울려 차를 마시는 기쁨이 나를 기다린다.

 

육사생도 아들을 두신 법우님의 얘기로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아들이 육사여생도를 데리고 휴가를 왔는데,

법우님이 애써 표현을 하시지 않았지만,

어머니로서 갖는 자랑스러움과 함께 미묘한 다른 감정이 있었나보다.

 

아들과 여자친구에 대한 어머니의 마음은

곧 두 법우님의 시집살이 이야기로 연결되었고,

법상 스님의 귀중한 가르침이 있었다.

'아! 그렇구나.' 하고 다가오는 것이 있었다.

 

법상 스님의 말씀에 의하면,

신도들이 큰스님을 뵙고나면,

큰스님이 별로 말씀을 하지 않으셨는데도 문제가 해결된 것 같고

마음이 편해지는데, 그 이유는

큰스님은 신도의 고충을 신도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고충을 가진 신도가 당신 앞에 오는 것 자체를

당신의 문제로 인식하시기 때문이라고 한다.

 

큰스님은 그 신도와 당신이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아시는 것이다.

그래서 신도더러 이렇게 저렇게 하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씀하는 대신에

신도의 고충과 연결된 당신의 문제를 알아차리고 해결하신다.

당신의 문제가 해결되면 그것과 연결된 신도의 고충 또한 해결되는 것이다.

 

심리상담사와 큰스님의 차이점이 여기에 있다.

심리상담사는 환자와 자신의 문제를 별개로 생각한다.

나도 심리상담사와 다르지 않았다.

 

오늘의 깨달음은 내게는 무척 소중한 것이다.

나는 매일 새벽 108배를 하며 딸을 위한 기도에 정성을 기울인다.

나는 딸이 여러 좋은 조건을 타고났음에도,

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딸의 문제로 인식하였다.

그래서 기도도 딸이 스스로 깨닫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다.

 

오늘의 깨달음은 내게 그러지 말라고 가르친다.

딸의 문제는 나와 연결되어 있고 나의 문제인 것이다.

나는 수행을 통해 나를 닦으면 되는 것이다.

 

내가 바뀌는 것이지 내가 딸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딸은 자신이 알아서 자신을 바꾸겠지만,

그것은 내가 관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관여해서도 안되는 것이다.

딸이 스스로 깨닫고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조차도 가져서는 안되는 것이다.

 

마음이 편하다.

딸과 아내에 대해 따뜻한 감정이 일어난다.

목탁소리 음악이 감미롭다.

아침햇살이 밝다.

배가 고프다.

 

대성 두손모음.

 

- 법상스님 “마음나누기” 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