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산골일기: 너무 슬펐던 날.

덕 산 2023. 2. 16. 09:50

 

 

 

 

 

산골일기: 너무 슬펐던 날. 

 

오병규 2023-02-16 09:03:35

 

삐~익~’천등산이라도 허물 듯 한 날카로운 음향이 귓전을 때리는가 싶더니 저절로 어깨가 들썩이는 뽕짝가요가 골짜기에 메아리 되어 요란하게 울려 퍼진다. 잠시후 그토록 신명나는 음악이 뚝 끊기며‘아!아~ !아!아 마이크 시험 중입니다.’라는 마이크테스트 멘트가 두어 번 역시 골짜기에 울려 퍼지더니 연이어 느릿느릿“대월리 주민에게 알립니다. 오~느~을~마을회관에서 대월리 주민 대동계와 2011년 노인회총회가 있사오니 많이 참석하셔서 자리~이를 빛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대충들어도 마을회관에서 날아오는 소집통보이다.

 

갑작스런 것은 아니다. 이미 수 일전 이곳에서 나의 멘토인‘이 반장형님’으로부터 구두로 통보를 받았던 마을행사이다. 때는 깊은 겨울속의 농한기라 이런 행사를 매년 연다는 것이다. 산골 초짜인생이 어느 명이라고 거절이나 농땡이를 치겠는가.

 

때 빼고 광은 안 냈어도 이곳에서 외출 시에만 입는 계량한복을(하긴 한양 상경할 때도 꼭 이걸 입지만…)갈아입고 시간에 늦지 않게 마을회관으로 내려갔다. 농한기는 농한기인 모양이다. 회관엔 이미 웬만한 분들은 거의와 계신다. 초짜인 내가 들어서자 모두들 시선이 내게로 쏠린다. 목례를 하고 좀 한가한 자리에 다소곳이 앉자 회장님(노인회)께서‘오 선생!낯 가리지 말고 이리 오시오!’란다. 불감청이언정고소원, 그렇잖아도 서먹하던 차에 냉큼 회장님 옆자리로 옮겼다. 괜히 든든한 빽이 생긴 것 같아 처음 들어올 때 보단 내 스스로 마음이 편해진다.(하긴 여기서 빌빌거리면 왕따 당할지 모른다는 강박관념도 한 몫 하던 찰나에….)

 

아무튼 애국가 없는 마을대동계가 젊은 이장님의 주도하에 식순에 의해 진행 되었고, 지난 해 마을에 있었던 대소사와 애경사 그리고 찬조금, 정부지원금입출내역 등등등…대주민 보고 기타 금년에 있을 마을의 행사 및 협조 안내 등등….시간이 갈수록 회의라기보다는 이웃끼리 지껄이는 목소리가 젊은 이장님의 목소리보다 더 커졌지만 무사히(?)주민대동계는 마쳐지고, 이어2011년 노인총회가 열린다.

 

역시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생략,,,,통상적인 회장님의 간단한 인사말씀이 계시고 또한 지난 한 해 노인회와 관계된 사안들에 대한 보고가 있은 뒤 노인회총회도 무사히 끝이났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가운데 노인회에서 마련한 떡과 음료 식사가 차려지고 소주도 두어 순배 돌았을 즈음 옆자리의 회장님(난 이때까지 이 산골의 최고실력자 옆을 떠나지 않았다.)께서 갑자기‘오 선생 금년춘추가 어떻게 되시오?’란다. 아니 이 양반이 갑자기 웬 남의 나이를….‘아~! 예, 쥐띱니다.’,‘으~음, 쥐띠라!? 무자 생이면 육십 서인가 너인가? 아무튼 금년엔 토끼띠 이상은 노인회에 가입해야 하는데….’

 

전혀 예상치 않았던‘노인회가입’이라는 말씀이 귓전을 때리자 순간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만큼 이나 먹먹해진다. 그리고 속으로‘노인회…노인회…’그리곤 머릿속이 하얗게 되며 아무 생각이 없다. 대답이 없자 회장님은“노인회가입 하셔야지!?”라시며 거의 강요를 하신다. 빽 인줄 알고 옆자리에 앉았더니….그제야 회장님이 우군이 아니라 원수 같다.

 

아이고! 내가 노인회회원이라니….노인….노인….내가 언제 아니 벌써 노인이라고???노인…하늘이 노랗다. 엊그제 할아버지 손잡고 뒷산에 오르던 기억이 새롭고, 어머니 손잡고 우리쌍둥이 손녀 기저귀만 한 손수건 왼쪽가슴에 달고 초등학교 입학하던 때가 불과 며칠 전 같은데…온갖 상념이 주마등처럼 돌아간다. 내가 노인이 되다니….하~아~!!!인생…인생…

 

하긴 할아버지 된 게 8년 전 얘기 아니던가. 뿐인가? 딸 아들 시집장가 다 가고 손녀가 또 셋씩이나 불어났으니…할아버지…할아버지….할아버지=노인, 노인=할아버지라는 등식이 성립된다. 아! 슬퍼다. 슬퍼….공짜점심 먹으러 갔다가 뒷방 늙은이 자격증만 받아 왔으니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아~! 정말 무지 너무 슬펐던 날이다.

 

갑자기 나훈아의“청춘을 돌려다오!”라는 노래가 듣고 잡다. 청~추~운을 돌려다~아~오! ,청~추~운아~ 내 청~추~운아~! 어딜 가~았느~~으~으냐~!?

 

덧붙임,

노인회가입비를 5만 원 내라고 한다. 이거 뭐, 오히려 장려금(?)아니면 위로금을 받아야 하는 건데…그러나 전국마을노인회 가입연령이 만60이라니 오히려 미가입 벌금 안 문 것 만해도 어딘가. 우리 동넨 인정이 넘치는 마을인가 보다. 그런데 한심한 건 내가 제일 쫄병이라는 사실이다. 마을회관 물주전자나 막걸리주전자 당번이다. 애고!! 이제부터 가급적 마을회관 근처엔 가지 말아야 쥐…….;;;

 

BY SS8000 ON 1. 14, 2012‘

 

- 출 처 : 조선닷컴 토론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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