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나무 한 그루의 세상
- 이 영 광 -
자고 난 뒤 돌아앉아 옷 입던 사람의 뒷모습처럼
연애도 결국은,
지워지지 않는 전과로 남는다
가망 없는 뉘우침을 선사하기 위해
사랑은 내게 왔다가, 이렇게
가지 않는 거다
증명서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교정의 단풍나무 아래 앉아 있는 동안
이곳이 바로 감옥이구나, 느끼게 만드는 거다
사람을 스쳤던 자리마다
눈 감고 되돌아가 한 번씩 갇히는 시간
언제나 11월이 가장 춥다
모든 외도를 지우고
단 한사람을 기다리는 일만으로 버거운 사람에게
이 추위는 혼자서 마쳐야 하는 형기?
출감확인서 같은 졸업증명서를 기다리며
외따로 선 나무 아래 외따로 앉아 있는
추운 날
붉고 뜨거운 손이 얼굴을 어루만진다
혼자 불타다가 사그라지고 다시 타오르는
단풍나무 한그루의 세상
무엇으로도 위로할 수 없는 순간이 있고
떨어져서도 여전히 화끈거리는 단풍잎과
멍하니, 갇힌 사람이 있고
인간의 습성을 비웃으며 서서히 아웃되는 새떼들이 있다
반응형
'좋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풍 / 송재학 (0) | 2022.11.17 |
---|---|
단풍아 산천 / 신동엽 (0) | 2022.11.16 |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 정희성 (1) | 2022.11.14 |
그 아무 것도 없는 11월 / 문태준 (0) | 2022.11.13 |
단풍을 말하기 전 / 고영민 (0) | 2022.1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