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발길
- 마 종 기 -
여름의 신열을 내리려고
나무는 한 달째 잎을 털어내고
며칠째 계속 해열제까지 써도
큰 서리 내리기 전, 가지를
다 비우기는 힘들겠다.
그래도 잎이 대강 떠난 나무,
눈치껏 많은 빈자리에 아우성
감들이 찾아와 매달렸다.
늘 그랬다. 누군가 떠나야
남아 있는 발길이 쉽다.
공중에 떠다니는 미풍까지
감의 모든 틈새를 채우고 있다.
감꽃이 지고부터는 내내
그늘에 숨어서 가는 숨 쉬며
떫은 세상의 맛을
달래고 어루만져주던 손,
씻고 닦아주던 하늘의 손.
추워야 단맛이 들고
며칠은 하늘이 높아야
감색이 더 환해진다는데
단맛과 색이 살고 있다는 곳,
가을이 새끼를 친다는 나라로
서리 헤치며 길 떠나는
평생을 달고 고왔던 내 친구.
올해는 그 정든 발소리까지
흥이 나는 듯 장단이 맞네.
담담한 저녁녘의 11월이 떠나고
잘 자란 감이 나무와 이별하면
우리들 나이에는 단맛이 들겠지.
한 목숨의 순결처럼 말없이
먼저 떠난 하늘에서는 해가 지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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