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우(khw***) 2018-10-27 15:26:53
멀쩡한 날씨에 길을 가다가 번쩍 꽈르릉 하는 벼락을 맞는다면 하는 가상의 상황을 상상하여 본 것일까요..
아니면 실제로 그런 변을 당하는 경우가 있었거나 있는 것일까요.. 아무튼 그런 일이나 그와 유사한 일들을
‘날벼락’이라고들 합니다. 전혀 예기치 못하였던 일이 갑작스레 눈앞에 닥쳐지는 것 그것이 좋은 일이라면
놀라면서도 좋아하겠지만 나쁘고 끔찍한 일이기에 ‘날벼락’이라고 하는 것이겠지요.
그런 정경이 제 눈앞에 들어왔습니다. 쯧, 사람이 아니라서 다행이기는 하지만.. 지금은 10월 하순..
가을이 깊어 날씨가 쌀쌀해져서 설악산에는 눈도 많이 온 장면을 TV는 보여주고 있는데..
저희 교회에서는 겨울 맞을 채비로 화장실 증축공사를 하고 있는 중에 하수관을 연결을 위하여 땅을 파
내려가다가 보니 어허 저 아래 하수관 위쪽 흙더미 위에 개구리 한 마리가 엉금엉금 기고 있습니다.
겨울잠을 자려고 들어갔던 녀석이 삽질에 걸려 나온 것이 분명한 것 같은데 그렇게 보아서 그런지
더욱 초췌해 보이고 눈꺼풀도 졸린 눈을 한 듯한 중간 크기 정도의 개구리인데 너무 불쌍합니다.
쯧, 그래.. 개구리야.. 땅속 깊이 들어가서 쿨쿨 동면에 취해있던 터였을 텐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
옷 한 자락 걸칠 틈도 없이 땅 파는 기계소리와 함께 떠밀려 나왔구나. 참.. 너는 원래 벌거숭이지..
그래서 더 불쌍하구나 털이라고는 한 가닥도 없는 몸이니 툭 하면 하얗게 서리가 내리곤 하는 이 늦은
가을 날씨에 얼마나 춥겠느냐.. 그런데.. 개구리는 어떻게 땅속 깊이 들어가는 것일까.. 갑자기 몹시 궁금해집니다.
두더지같이 땅을 파기에 적합한 손이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어떻게 나오는 것일까.. 자연책을 읽어보아야겠습니다.
사람들은 가끔씩 “맑은 하늘에 날벼락..”이라는 말들을 쓰곤 합니다. 사전을 찾아보니 “뜻밖에 당하는 불행이나 재난.
생벼락.”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는 단어이군요. 그래요 맞습니다. 지금 이 상황이 개구리에게는 지금이 ‘날벼락’의
상황이 분명합니다. 쿨쿨 평안히 잠자기를 내년 봄까지는 하여야 하는데 갑자기 쿵쿵 푹푹 하는 삽질 소리가 들리더니
사정없이 파헤쳐지면서 이렇게 된 것이지요. 갑작스런 상황과 추운 날씨에 노출되면서 원래의 모습처럼
팔짝 팔짝 뛰지도 못하고 저렇게 엉금엉금 기고 있는 개구리를 보고 있자니.. 그래 날벼락이 따로 없구나..
불쌍하기는 한데 어떻게 도와주어야 하는 것일까.. 그냥 땅 속에 다시 묻어주면 되는 것일까..
개구리가 스스로 땅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개구리를 땅에 묻는 것은 큰 차이가 있을 것 같은데 혹 죽어버리지는 않을까..
개구리의 동면 환경은 어떤 것일까.. 그냥 따듯한 보일러실에다가 넣어 놓으면 겨우내 살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겹쳐집니다...
그리고 가만히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돌아보자면 특별히 누구라고 한정할 것도 없이 우리 모두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크게이든 작게이든 ‘날벼락’ 같은 일을 당했음을 떠 올릴 수 있습니다. 또 앞으로의 일도 장담할 수 없고..
그것이 그저 “영차”하고 힘을 주면서 넘어 갈 수 있는 일이라면 다행이기는 하지만 감당할 수 없는 정도의 무거운
절망으로 짓눌리게 되는 경우라면 즉 상기한 개구리와 같은 처지와 상황이 되는 것이라면 정말 암담하고
비참하게 끝나버리는 일로 이어지는 것 외에는 다른 전개를 소망하여 볼 수가 없습니다.
겨울잠을 자던 중에 사람들의 삽질로 인하여서 밖으로 꺼내어져 버린 알몸 개구리.. 언 듯 생각하기에도
그 개구리의 생명의 보존은 오직 사람들에 의해서만 될 수 있는 것이겠구나 하게 됩니다. 그러나 과연 누가..
그렇게 죽음 앞에 노출된 개구리 한 마리의 생명에 크게 신경을 쓰면서 일부러 그 개구리를 살리려고
수고하고 시간을 내며 애를 써볼까..
‘아닌 밤중에 홍두깨’ 라는 말도 일종에 ‘날벼락’에 속하는 것이겠지요. ‘홍두깨 방망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벌써 반세기도 넘은 전에 어머니는 우리가족이 먹을 칼국수를 만드신다면서 밀가루 반죽을 넓게 펴서는 기다란
방망이를 그 위에 이리 저리 굴렸습니다. 그때 옆에 앉아 ‘칼국수의 생성현장’을 재미있고 주의 깊게(!) 구경하고 있는
저를 보시면서 씩 웃으시고는 “이것이 홍두깨 방망이란다.” 하셨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그리고는 이어하신 말씀
“저 아랫동네 어대장 집 옆에 OO이네도 도둑이 들어와서 이것으로 내어 쫓았다고 하지 않던” 허허. 정말일까..
그래요 충분히 정말일 수 있습니다.
1960년대 초 중반.. 좀도둑이 많았던 시절이었습니다. 밤중에 담을 넘어 들어오는 ‘정식도둑(?)’들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작은 도둑’들이 많았고 거기에 어른들 특히 아주머니들은 늘 시달렸습니다. 아마도 모든 물자가
부족했던 때문이었겠지요. 밖에 내어 놓은 부지깽이, 널어놓은 빨래, 뒤편에 모아 놓았던 빈병들..
그리고 심지어는 마당 수돗가에 씻으려고 내어 놓았던 그릇들이며 전복껍데기 비누곽 같은 것까지도
휙 하는 사이에 없어지곤 하였습니다. 넝마주의가 걷어갔네 거지들이 집어갔네 께끼(아이스케키 장수)들이
가져갔네 또는 고물장수가 들고갔네 하는 말들을 하곤 하였습니다만 그렇게 알거나 짐작한다고 하여도
다시 찾게 되는 일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그러한 현장에서 과연 ‘홍두깨 방망이’가 질서유지와 도둑 퇴치 역할을 하였던 것일까? 사실은 아닌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어르신들은 대개가 “쯧쯧 입을 것이 없어서 가져갔겠지.” 또는 “밥그릇이 없어서 들고 갔겠지.”하는
식으로 넘어가는 경우를 많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휴 그래요 너나없이 가난했던 시절 나 없는 것은 너도 없었고
그래서 우리 모두가 가지지 못했던 시절이었지만 그렇다고 인심이 각박하거나 살벌한 악다구니를 쓰면서
살지는 않았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래서 지금의 어르신들이 가끔씩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하시면서 긴 한숨을 내어쉬곤 하시는 것일까요..
이야기가 엉뚱하게 비약을 하였습니다만 그때는 좀도둑이 많았어도 그렇듯 한 가정에 날벼락’을 일으키는
정도의 것들은 아니었고 그저 쯧쯧 혀를 차면서 하면서 넘어갈 정도의 것들이었는데 지금은 말 그대로 한
가정에 돌이킬 수 없는 끔찍하고 극악한 ‘날벼락’을 일으키는 범죄들이 자꾸만 더 우리 사회 속에 만연되어져
가는 것 같아서 휴우.. 긴 한숨이 작금 가을날 그것처럼 깊어집니다. 반면에 사람들은 가끔씩 ‘돈벼락을 맞았으면 좋겠다’고
말들 하는데 사실은 ‘돈벼락’이라고 하는 것은 꼭 ‘날벼락’이라고 하는 동료와 함께 들어오는 것이어서
그것 역시 혹시라도 바라거나 꿈꾸지 마실 것을 권면 드립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아니 우리 사회 속에서 정직하고 신실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모든 분들이 흉측한 풍조의
만연 속에서 ‘날벼락’을 맞거나 당하여 쓰러지는 일이 없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아무도 삽질을 해대지 아니하는
개구리의 동면자리처럼 안전하고 그래서 평안한 날들이 이어지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제가 그 ‘개구리’를
어떻게 하였을까요? 이에 대한 여러분들의 상상이 저 한 사람의 성품에 대한 생각과 평가를 반영하는 것이 되겠지요.
어떻게 하였을까.. 그 정답을 맞추어 말씀하시는 분에게는 우리 마을 근처 유명한 K중국집에서 맛있는 짬뽕을 사드리겠습니다. 하하 늘 건강하세요.
산골어부 20181027
- 출 처 : 조선닷컴 토론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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