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우(khw***) 2018-03-03 11:09:41
교회 마당에서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주웠습니다. 화단 경계석 사이에 한 쪽 면의 젖은 물기가 얼어 돌에
붙어있던 것입니다. 그래.. 불쌍하구나.. 살짝 떼어 빼내어서 “나 돈 주웠어.”아내에게 가져다주었더니 주일날
예배로 나왔던 성도들 중에 누군가가 떨어뜨린 것 같다고 하면서 헌금으로 넣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혹시
주일학교 아이들이 그 옆쪽에 있는 그네를 타다가 빠뜨린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찾아주어야 할 텐데..
잃어버린 아이에게는 큰돈일지도..
그러나 곧 고개를 가로젓게 됩니다. 쯧, 이제 천원이라는 돈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큰돈이 아닌 것이 확실하지만
저는 순간 저 어릴 적 천원의 용도를 기억으로 떠올렸던 것입니다. 즉 아주 오래 오래 전 천 원짜리 한 장으로 당시
10원하던 삼립 크림빵을 100개나 살 수 있었던 때를 기억해 냈기 때문이지요. 바로 1960년대 중반 즈음입니다.
부드럽고 달콤한 그래서 언제나 먹고 싶었던 크림빵을 100개나 살 수 있는 돈을 가졌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흠.. 하긴 그때는 천 원짜리가 없었던 것 같고 10원, 50원, 100원 짜리 지폐의 시절로 지냈었는데 얼마가 지나서 500원,
1000원짜리가 처음 나오게 된 것으로 기억됩니다.
삼립 크림빵은 지금도 여전히 거의 같은 모양과 포장으로 나오고 있는데 개당 가격은 천 원이네요.
그래서 단순 도식으로 본다면 지금은 1960년대 때보다 물가가 100배 오른 것이지요. 그래서 당시의
거금 천 원짜리도 반세기 세월이 흐르자 저렇게 차가운 겨울 마당에 한구석에 저렇게 얼어 붙어있는
것으로 자신의 현주소가 어딘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사이 아이들은 천 원짜리 지폐를 가지고는 무엇을 살까..
예전에는 하찮은 액수를 일컬어 ‘애들 껌 값’이라고 하였는데 천 원짜리가 정말 ‘껌 값’이 된 것 같고..
아니 제가 가게에 들어가서 껌을 사본지가 오래 되어 잘 모르기는 하지만 어쩌면 껌 값에도 못 미치는
액면가가 되어버린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저렇듯 초라한 모습으로 마당 한 쪽에 얼어 붙어있었던
천 원짜리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나.. 이제 이런 처지가 되었다우...”
마치.. 나 이제 늙은이가 되었다우..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는 다우.. 아무도 돌봐주는 사람이 없다우... 하며
신세한탄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늙은 돈’의 푸념이라고만 넘어가기에는 쯧, 뭔가 애잔한 마음이 들게도 하는데
그 이유는 그 이름을 ‘사람’으로 바꾸어 놓아도 역시 같은 모양이며 처지가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래요.. 당장은 아니겠지만 언젠가는 천 원짜리 지폐도 서서히 용도폐기 되는 때가 오겠지요. 그때가 되면 지금
만 원짜리가 천 원짜리의 자리와 용도를 물려받게 되는 것일까.. 1960년 대 초반 즈음에 화폐개혁이 단행 되었었는데
저렇게 초라한 천 원짜리 지폐의 현재를 바라보면서 이제 또 그럴만한 시점에 이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무엇이든지 용도와 목적을 가지고 이 세상에 나오면 그것의 전성시대가 있습니다. 사람도 그렇고 물건도 그렇고
자동차도 그런데 지폐 역시 마찬가지이지요. 저 천 원짜리도 전성시대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저 같은 사람도 소싯적에
어쩌다 천 원짜리 하나를 얻어 손에 쥐었을 때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할 때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풀빵도 사먹고
해삼도 사먹고 물총주스와 박하사탕도 사먹고.. 광무극장에 가서 영화도 보고 청계천에 천막을 친 서커스도 보고..
한 시간에 30원 하던 자전거도 마음껏 빌려 탈 수 있고... 그래요.. 그렇게 어린 꿈을 이루어주던 천 원짜리가 자신의
전성시대를 뒤로하고 이제는 그저 껌 몇 개와 겨우 바꾸는 정도의 모습이 되어 저렇게 겨울 찬바람 속 얼어붙은
마당 한 구석에 떨어져 몸도 마음도 떨고 있었구나..
올라간 곳에서는 내려갈 일 밖에는 남은 것이 없다고.. ‘전성시대’를 지냈다면 ‘퇴물시대’를 맞이하는 일 밖에는 달리
무엇이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씁쓸한 기분이 땅거미가 지는 모양처럼 마음을 잠식해 옵니다. 그래..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리 늙어도 아직 할 일이 남아 있고, 감당하여야 할 몫이 있고 그래도 아직은 움직일 여력이 있다고
자기 자신에게 강변하면서 호흡을 이어가고 있음에 다름이 아니지.. 하긴 늙었다고 낙담하고 절망하여 자리 펴고
누워서 숨쉬는 운동(!)만을 계속 하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자기자신 스스로의 비참함을 극대화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누구나 다 맞이하게 되는 노후(後).. 그리고 이어지는 마름의 편안함을 위해서 지금 저렇게 분주히 대책들을 세우는 것이지..
그래요 이즈음이 되었으면 휴... 긴 호흡으로 나의 삶을 돌아보면서 지난날들 속에서 엉키어졌던 일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빛바랜 사진 쓰다듬어 보듯 하면서 이제는 절대로 돌이킬 수 없는 ‘나의 현재’를 인정하면서 혹시라도 내 마음 속에
지금껏 얼어붙어 정처를 찾지 못하고 있는 그 ‘어떤 것’이 있어서 추운 겨울마당을 구르는 것처럼 하고 있다면
이제는 내 마음의 뜨거운 입김으로 호호 불어 녹여내야 하겠습니다...
지난날의 모든 몸부림과 발버둥의 흔적들을 다 지워버리고 평안함의 모양을 갖추기 위함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날마다 복(福)을 빌지만 주어진 날들을 그 중에서도 만년의 날들을 평안함으로 지내는 것보다 큰 복이 없습니다..
유난스레 추운 이번 겨울.. 얼어붙은 마당에서 주운 돈 천 원짜리 지폐가 안쓰러워 잠시 쓰다듬어 보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산골어부 201833- 출 처 : 조선닷컴 토론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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