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규(ss8***) 2017-11-19 03:58:31
내 형님을 욕되게 하고자 함이 아니다. 형님은 7남매의 맏이다. 형님은625로 인해 한쪽 다리가 대퇴부까지 없는 불구다.
서울 수송 초등학교(지금은 폐교가 된) 3학년 9.28수복일 날 폭격으로 그리됐으니 소년기. 청소년기에 얼마나
놀림을 받았겠는가.(지금 같은 세상이 아니었으니…)그래서 그런지 형님의 성격은 외골수다. 吳哥고집도 한 고집한다던데…
도를 넘었다. 자신이 뭔가를 이루어야겠다고 생각하면 절대 양보가 없다. 형님의 이런 고집 때문에 많은 충돌을 일으키며
자라기도…또 장남이 그러하니, 그저 가련하고 불쌍한 부모님의 마음이야 오죽했겠으며, 없는 속에서도 형님의
원(願:바람)은 비교적 잘 풀렸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런 형님은 술. 담배. 잡기에 능했었다. 그런데 언제이던가? 세상 유혹을 다 뿌리치고 신학을 공부하더니만
목사 안수를 받고 조그만 개척교회도 열고 열심히 사제가 되어가는 듯했지만, 겨우 몇 명의 신도로는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을 것이고…부모님 살아생전에는(아! 다리병신에게 시집올 사람이 없으니 평생을 독신으로 있다.)
그래도 그늘 아래에서 생활 걱정이 없었다. 교회가 되는 둥 마는 둥 할 당시에 여러 번 권고를 했다‘차라리
지방으로 내려가서 조그만 교회를 짓고 사역을 하시는 게….’그러나 그놈의 황소고집이 씨알도 안 먹혔고….
열심히 다니던 교회를 내가 포기한 것은 형님의 그런 사제로의 독선(?)에 배신감 같은 것을 느낀 것도 한 몫 한다.
아무튼 그런 형님은 부모님 돌아가시자 끈 떨어진 갓 신세가 되었다. 그 후 인천 동암역 쪽에 조그만 다세대
주택을 구입해 살고 있지만, 나머지6남매 다 가정을 가지고 있으니 장가 안 간 독신의 형님을 누가 모시려
아니 그럴 수가 없지 않은가. 많지 않지만 매월 월급 드리듯 송금을 하기도 얼굴 마주치면 안쓰러움에
단 돈 몇 푼이라도 집히는 대로 드리면 한 번도 사양하시는 걸 못 봤으니 그게 또 안쓰럽고 눈물이 나려한다.
‘이 양반이 이렇게 사시는 게 아니었는데…머리 좋고 총명하여 수재 병신이라고 놀림을 받았었는데...’생각하며‘
그러게 웬 고집이 그렇게 쎄 가지고는….’하며 내 혼자 속으로 장탄식을 한다.
그런 형님이….며칠 전 전화를 주셨다. 거금이 생겼는데 그동안 고마웠고 하니‘내가 너에게 성의를 조금
표시’하겠다며 전화를 주신 것이다. 솔직히 감지덕지 아닌가?‘그럼 만납시다.’하고 만사 제쳐두고 동암으로 달려갔다.
공돈이 생긴다는 대야….형님을 만나자(끝까지 돈의 출처를 밝히지 않는다)오백만 원 수표 한 장을 내민다.
감사히 받고 돌아왔다.
그것으로 끝이 났으면 내 갈등(?)이 증폭 되지도 않았을 것이고 실소(失笑)따위도 없었을 것이다. 엊그제 막내
여동생이 전화를 했다.‘오빠는 큰오빠한테 얼마 받았어?’,‘아니!?니가 그걸 어떻게 아냐?’라고 시치미를 떼었으나,
전후사정 얘기를 듣고 보니 형님은 나뿐 만아니라 다른 동생들에게도 얼마씩 나누어 주었던 모양이다. 그 기까지는
형님의 선행(?)에 감사했었는데, 막내여동생의 전언(傳言)에 그만 나는 꼭지가 돌아 버린 것이다. ‘근데 오빠!
큰오빠 당첨금이 40억이 넘는데…’,‘뭐야!? 당첨이라니 그리고40억? 그래서 형님이 돈의 출처를
얼버무리고 함구 했어…!!??’,‘내~이~C바~!그냥 안 둔다.’그리곤….
형님에게 며칠 째 전화를 걸고, 어제는 동암 형님의 집으로 직접 찾아갔으나 현관문은 굳게 잠겨 있고 인기척이 없다.
요 며칠 간 이런저런 일로 짜증스러웠고 힘들었던 게 이 일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고 할 수 없다. 도대체 이 양반이
어디로 갔을까? 의례 로또에 당첨된 사람들처럼 벌써 해외로 튀었을까? 누나네로 동생들에게로 형님의 행방을
수소문하기 위해 계속 전화를 돌리며 나의 분노는 증폭해가고‘C바~!잡히기만 해봐라!’막무가내로 전의(戰意)를
다지다가, 문득‘하이고~! 오병규 너 그러면 죄 받는다. 밥 굶지 않으면 되었지…욕심 내지마라!’ 이런 생각이
퍼떡 들며 비몽사몽간에‘이건 꿈이야~이건 아냐~!이래선 안 돼!’라며 크게 머리를 흔들어 본다.
그리고 연이어“흐어~!그 참!”이라며 실소(失笑)를 했다.
꿈을 잘 꾸지 않는다. 꿈(희망)이 없어서 인가? 꿈(희망)을 포기한 것일까? 어떤 때는 악몽에 시달리기도 또는
무슨 꿈인가를 꾸었는데, 깨고 보면 내용이 생각나지 않는 개꿈(?)뿐이다. 나에 비하면 아내의 꿈 이야기는 생생하다.
‘어제 꿈에는….’으로 시작되는 아내의 꿈은 신통하게 뭔가를 예시하는 꿈들이 많았다. 아니 거의 그랬던 것 같다.
가끔씩 농담으로‘파고다 공원에 자리 하나 펴지…’라고 하지만, 때로는 섬찟하고 비릿한(여기서 비릿함이란,
부부지간의 비리 또는 부당성을 말함)꿈도 있을 때는‘혹시 이 사람 전생이 무당이나 박수였거나 그런
기질을 잉태하지 않았나?’하고 생각하며 전율 할 때가 있기까지 한다. 원! 별스런 얘기를 다하고 있다.
악몽에서 깨어 건너편 아내의 침대를 바라보니 아내는 아직도 꿈나라를 헤매고 있다. 가늘게 코까지 곤다.
다행이다. 아무리 꿈이지만 사람의 욕심이 어디까지 인지 워~언!!!정말 쪽 팔리는 꿈이다.
그래서 실소(失笑)가 터져 나온 것이다.
2009년 9월 중순의 어느 날 씀.
- 출 처 : 조선닷컴 토론마당 에세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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