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단풍, 날더러 어쩌라고요
- 전 숙 -
불현듯 가슴이 젖어드네요
고개를 저으며 가슴에 자물쇠 채웠지요
가을하늘빛에 태도 없이 스며드는 쪽물처럼
가을을 삭이느라 틀어놓은 아를르의 여인 맑은 울림
어느새 자물쇠 흔들어 빗장 흘러내렸나 봐요
세월이 진 나에게도 태도 없이 흘러들어와
계곡마다 녹아내리는 빛의 축제 열리나 봐요
봄에는 그리운 소식 남으로부터 오더니
이 계절에 정수리부터 물들어오는 담홍색편지에
그만 빗장 풀려진 마음 촉촉이 기울여봅니다
이 나이에 사랑을 불러내어
무얼 어쩌자는 것은 아니지요
그저 고운 빛 바라보며
나도 한때는 그런 고운 빛 쪽물호수에 담기면
고요하던 수면 화들짝 잠깨어
한소끔 어질 거리고
물방울마다 반짝이며
화드득 환호하던 그런 시절 지나왔노라
추억처럼 살랑대는 애기단풍에게
아닌 척 들려주고 싶은 것이지요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세월이 져도
그 세월은 겉포장에만 지는 세월이군요
속울음에는 아무리 빗장을 질러도요
저뭇해지는 그림자 먼 빛에도
스르르 빗장이 풀려버리는 것을요
여전히 붉은 눈길 받으면
평심장 뜨겁게 달아서
적포도주 확 퍼져오는데 날더러 어쩌라고요
백두대간 온 천지
이내몸에 고운 단풍 사무쳐 오는데 날더러 어쩌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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