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봄날 / 이태수
두운 자물쇠를 풀고, 먼 산도
가슴 깊이 불러앉히고,
오늘은 느긋한 날. 팔베개를 베고 누우면
눈썹 사이로 뜬구름들
뒷짐지고 걸어가고,
개울의 돌부리 어루만지며
흐드러지는 물소리.
누가 이 졸음겨운 봄날을
아지랑이처럼 서성이고 있는지, 누가
물오르는 나무에 기대어 서서
버들피리를 불고 있는지,
꽃피우고 있는지.
뒤돌아보면 아득하게
하늘 가득 푸른 물감 번지고,
눈감으면 비로소 작은 오솔길들이
하나가 되어
깨금발을 하고 있다.
어두운 자물쇠를 풀고, 남쪽으로 흐르는
강물을 따라가보면
오늘은 가만히 날아오르고 싶은 날.
내 허물의 큰 키 위로는
목련의 하얀 꽃잎들이 흩날리고,
막막한 산들이 내 가슴 깊이
푸른 소나무 가지를 흔들고 있다.
깊은 솜을 들이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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