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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멀미 / 이문재​​

덕 산 2025. 5. 24. 09:02

 

 

 

 

 

꽃 멀미 / 이문재​

봄꽃들은

우선 저질러놓고 보자는 심산 같다

만발한 저 어린것들을

앞세워 놓고 있는 것이다

딸아이 돼지저금통을 깨

외출하는 봄날 아침

안개가 걷혔는가 싶었는데

저런 저기 흰 벚꽃

박물관 입구 큰 벚나무

작심한 듯 꽃을 피워놓고 있었다

희다 못해 눈부시다 못해

화공약품을 뿌린 듯한 오래된 벚나무

흰빛은 모든 빛을 거부해서 흰빛

가까이 가면 내가 표백될 것 같았다

 

동창 녀석은 확답을 주지 않았다

왼쪽 구두코에는 발자국이 찍혀 있고

윗저고리에는 아직도 삼겹살 냄새

나트륨등 켜져 있는

농업박물관 입구

아무 말 없이 흰 꽃잎 두어 장

새벽 한 시 근처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 말만은 하지 않았어야 했다

야 임마 내가 이렇게 떳떳한 것은

내가 이 가난을 선택했기 때문이야

아 그 말만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