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박눈 / 김혜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가
더 이상 우리 말은 듣지 않겠다고
작정한 순간,
폭설이 쏟아졌다
그것도 모르고
땅에 계신 우리는 하늘을 향해
아버지, 아 아 아버지
목청껏 간구했다
그러나 아무 목소리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상달되지 않았다
폭설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칼을 질렀다
그 다음 폭설이 우리와 우리 사이에
금을 그었다
두터운 잠과도 같은 금을 그었다
그것도 모르고
우리는 서로를 향해
망우리, 마아앙우리
같이 가자 같이 가자
목청껏 외쳤지만
아무도 멈춰서지 않았다
자꾸만 두껍게 더 두껍게 흰 금이
가로세로 그어지고
서로가 사막처럼 머얼어졌다
하늘에 있던 나와 땅에 있던 나마저도
머얼어졌다, 꿈속처럼

'좋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겨울 그리움 / 한병준 (0) | 2023.01.29 |
|---|---|
| 겨울의 구름들 / 류시화 (0) | 2023.01.28 |
| 눈이 내리면 더 그리운 사람 / 이효녕 (0) | 2023.01.26 |
| 겨울 강에서 / 정호승 (0) | 2023.01.25 |
| 시간이 멈춘 곳 / 장진순 (0) | 2023.0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