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쟁을 버리고 빛을 찾으라 / 법상스님
우리가 대비되는 양쪽에서
한쪽만 알거나
존재의 한쪽으로 지나치게 기울게 되면
도는 흐려진다...
죽음이 삶을 낳고, 삶이 죽음을 낳는다.
가능이 불가능해지고 불가능이 가능을 낳는다.
옳음이 그름이 되고 그름이 옳음이 된다.
삶의 흐름은 상황을 바꾸고
그리되면 상황도 그 모습이 달라진다.
그러나 논객들은 상황 속의 변화가 낳은
새로운 실재를 모르고,
항상 반대해 온 것을 계속 반대하고
주장해 온 것을 계속 주장한다.
그러기에 현인은 논리적인 주장으로
이런 저런 점을 증명하려 들기 보다
사물 전체를 직관으로 본다.
직관은 '나'와 '나 아닌 것'을 동시에 보기에
'나'의 관점 안에 갇히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모든 논쟁의 양 측에서
옳음과 그름을 동시에 본다.
그리고 결국 그것들이 도의 역전의 축에 연결되면
옳고 그름이 같아진다...
그래서 예와 아니오가 동시에 작용하는
무한한 가능성을 본다.
그리하여 나는 말한다.
'논쟁을 버리고 참다운 빛을 찾는 것이 낫다!'
[장자 2편 3절]
역시
장자의 위대함이란!!
어느 한 쪽만을 아는 사람은
양 쪽 모두를 알지 못한다.
어느 한 쪽에 치우친 편견을 가진 사람은
어느 한 쪽도 알지 못한다.
어느 한 쪽은 다른 한 쪽이 있기에 만들어진다.
다른 쪽이 없다면 한 쪽도 있을 수 없다.
그 둘은 둘이 아닌 하나다.
그런데 그 가운데 한 쪽만을 알고서
전체를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사랑 밖에 모른다면
그것은 한 쪽만을 아는 것이다.
사랑 그 다른 쪽에는 증오가 있다.
사랑을 하고 있다는 건
그만큼 증오의 씨앗도 내재되어 있다는 말.
사랑하지 않은 사람에게 배신당하는 것 보다
사랑하던 사람에게 당하는 배신은
더 큰 증오를 낳는다.
사랑이 역전되면 곧장 증오로 바뀐다.
그런데 어찌 사랑만을 문제삼을 것인가.
사랑만 알고서 전부를 안다고 할 것인가.
삶의 그 어떤 문제를 놓고서
그것이 옳다 혹은 그르다고 결정지을 수는 없다.
모든 문제는
옳은 쪽과 그른 쪽을 함께 가진다.
그 가운데 어느 한 쪽만을 지나치게 우선시 할 수는 없다.
옳은 쪽만 혹은 그른 쪽만을 고집해도
본질과는 멀어질 뿐이다.
그러니 어느 한 쪽을 옳다고
계속해서 주장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상황 속의 변화가 낳은 새로운 실재를 모르고,
항상 반대해 온 것을 계속 반대하고
주장해 온 것을 계속 주장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그래서 지혜로운 현인들은
논리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려들기 보다
사물 전체를 직관으로 본다.
어느 한 쪽에 치우쳐 보는 것이 아니라
양 변을 초월하여 전체적인 직관으로 본다.
그 직관은 '나'에도 갇히지 않고
'나 아닌 것'에도 갇히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생각은
'나'의 관점에 갇혀 있지만,
'나'와 '나 아닌 것'을 동시에 보는 자는
'나'의 관점 안에 갇히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는 모든 논쟁의 양 측에서
옳음과 그름을 동시에 본다.
어느 한 쪽만을 옳다고 혹은 그르다고 고집하며
두 편으로 나뉘어 싸우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결국 옳고 그름은 궁극에 있어 같아질 뿐이다.
'예'에도 '아니오'에도 머물지 말라.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말라.
'예'와 '아니오'가
'나'와 '나 아닌 것'이 동시에 작용하는
무한한 가능성을 보라.
금 긋기, 편들기를 버리고 전체적인 직관에 머물라.
일체 모든 치우친 견해를 버리고
무위로써 그 본질을 보라.
모든 논쟁을 버리고 참다운 빛을 찾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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