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의 삼학사(三學士)
서울중앙지법의 삼학사(三學士)
오병규 2024-11-16 05:15:22
삼학사 (三學士 )란 , 병자호란 때 조선이 중국 청나라에 항복하는 것을 반대하고 그와 동시에 척화론 (斥和論 : 화평을 배척하고 끝까지 항전하자는 주의 )을 주장했다가 결국 청나라에 잡혀가 모진 고문과 함께 참혹한 죽음을 당했던 척화파의 강경론자 세 사람 홍익한 , 윤집 , 오달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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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세 분은 병자호란 때 청나라를 오랑캐라 하여 처음에서부터 끝까지 주전론 (主戰論 )을 주장하였다 . 그러나 결국 인조가 삼전도 (三田渡 )에서 청 태종에게 중과부적으로 항복한 후 척화신 (斥和臣 )으로 찍혀서 청나라에 끌려갔으며 급기야는 심양 (瀋陽 )에 잡혀가 피살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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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 청 태종 재위 13 년에 청나라의 중건 3 주년을 기념하여 홍타이지는 조선의 세 학사의 높은 절개를 기리기 위해 선양에 사당과 비석을 건립할 것을 명령했으며 특히 비석에는 "삼한산두 "(三韓山斗 )라는 휘호를 내렸다고 한다 . 1932 년 "삼한산두 "(三韓山斗 )라고 새겨진 비석이 발견되면서 선양의 춘일공원 (春日公園 )에 삼학사 유적비가 복원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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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남한산성에는 삼학사를 모신 사당인 현절사 (顯節祠 )가 설치되어 있다 . 매년 삼학사를 기리는 제례를 연다 . 후일 송시열은 저서 삼학사전 (三學士傳 )을 통해 삼학사의 업적을 찬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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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심 선고한 한성진 판사
https://www.chosun.com/national/court_law/2024/11/16/QN3NH2TNANHZ3JNK6NK3W35J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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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마냥 기쁨에 젖어 이 대표에게 유죄를 선고한 중앙지법 판사님들에게 제대로 인사를 못 드렸다 . 중앙지법 세 분의 판사께 어떤 식으로 치하를 드려야 하나 생각해 보니 위의 삼학사가 생각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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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에게 잡혀가 모진 고문을 받으며 기꺼이 죽음을 택했던 삼학사다 . 고문을 가하기 전 홍타이지는 세 사람에게 전향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만 그들은 결코 의기 (意氣 )를 꺾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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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심 (結審 )의 날 , 중앙지법에는 개딸을 비롯한 이재명의 폭력적인 지지자 6 천여 명이 운집하여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 저들의 생각과 달리 자칫 불리한 판결을 내릴 경우 반도 (叛徒 )로 변하여 난동을 부릴 수도 있었으나 우리의 중앙지법 삼학사는 조금도 굴하지 않고 정의 (正意 )의 판결 (判決 ) 망치를 이재명 대표의 정수리에 내려치듯 두드린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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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삼학사의 쾌거가 이것에 그친 것일까 ? 그렇게 평가한다면 세 분의 판사님들에게 크나큰 결례가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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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내려친 정의의 판결 망치는 , 수없이 남아 있는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 ’ 결심 공판의 바로미터 (Barometer)가 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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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170 쪽의 머릿수로 공권력은 물론 검찰과 사법부를 자신들의 상노 (床奴 )나 마당쇠 취급하며 공갈과 협박으로 심지어 인격 유린까지 가하며 공무집행이 불가할 정도로 압박하지 않았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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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지법의 삼학사는 이재명 대표를 비롯하여 170 쪽의 머릿수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정의의 길을 과감히 열어 재낀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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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법의 삼학사 (三學士 ) 여러분 ~!!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 당신들이 진정한 애국자이십니다 . 그리고 이 대표의 남은 재판에도 또 다른 삼학사가 출현 (出現 )하기를 기대합니다 .
- 출 처 : 조선닷컴 토론마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