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 이승협 하루종일을 비가 내린다하늘이 젖고 공기가 젖고 나무가 젖는다우산이 젖고 술잔이 젖고빨래를 널지 못하는 아내의 걱정이 젖는다분홍 장미 연속무늬 벽지가 젖고원목 책장이 젖는다야, 우리들의 천국이야, 비닐장판 아래음습한 벌레들의 번식은 이미 시작됐다창 밖 저편의 세상이 흐려진다발을 헛딛고, 풍덩,우울의 흙탕물에 빠진다발이 젖고 무릎이 젖고 가슴이 젖는다목소리 따라 젖고두개골이 마저 젖는다.하루종일을 비가 내린다무지무지한 갈증이 내린다물 속에 갇혀서도 목이 말라물을 마시고 싶어진다물은 낮은 곳으로만 흐르는 줄 알았는데……비는 점점 높은 곳으로 흐른다물이 높아질수록몸은 더욱 깊이 가라앉는다이대로 둥둥 떠서 흘러갈 수만 있다면어부의 그늘에 걸리지만 않고하늘과 맞닿은 바다 끝까지 갈 수 있다면하늘로도..